[뉴욕=이데일리 김상윤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간) 캐나다 정부의 디지털 서비스세(DST) 시행에 반발해 양국 간 무역 협상을 전면 중단하고 향후 일주일 이내에 새로운 보복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 소셜’에 올린 글에서 “이 끔찍한 세금에 따라 미국은 캐나다와의 모든 무역 논의를 즉각 종료한다”면서 “캐나다가 미국 기술기업에 디지털세를 부과하기로 한 것에 대한 대응 조치”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캐나다는 유럽연합(EU)을 따라 터무니없는 디지털세를 도입했다”며 “향후 7일 이내에 캐나다가 미국과의 사업을 위해 지불하게 될 관세를 통보하겠다”고 경고했다.이번 조치는 캐나다 정부가 구글, 아마존 등 미국 빅테크 기업에 디지털 서비스세 부과를 공식화한 데 따른 보복 조치로 해석된다.캐나다는 지난해 디지털세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이 법안에 따라 빅테크들은 30일부터 세금을 납후해야 한다. 해당 세금은 연간 2000만 캐나다달러 이상을 캐나다 내 사용자로부터 벌어들이는 디지털 서비스 매출의 3%를 부과하는 방식이다. 메타, 알파벳(구글 모회사), 우버, 엣시 등이 주요 대상이다.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은 전날 G7 국가들과의 합의를 통해, 이른바 ‘보복세’(섹션 899 조항)를 폐지하는 대신 미국 기업들이 해외 디지털세의 일부 적용에서 제외되는 내용의 협상을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 합의는 캐나다 DST와 같은 개별국 디지털세는 제외됐다. 이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부과를 카드로 걸어 폐지를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이날 기자들과 짧게 만나 “아직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통화하지는 않았다”며 “복잡한 협상인 만큼 캐나다 국민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나가겠다”고 말했다.캐나다 재계와 일부 정치권에서는 트럼프의 압박에 대응해 디지털세 철회를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골디 하이더 캐나다 기업연합회 회장은 “무역 협상 재개를 위해 캐나다는 즉각적으로 디지털세 철회안을 제안하고, 미국 측도 관세를 철회하는 조건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더그 포드 온타리오주 주총리 역시 “디지털세는 글로벌 기술기업의 공정한 과세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으며, 어린 근희 [탐구당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좋은 교육을 받고, 부모님의 사랑을 충분히 받았지만, 네덜란드 방송인 미샤 블록(50) 씨가 얻은 삶의 교훈은 다음의 세 가지다. 첫째, 무조건적인 사랑은 없다는 것. 둘째, 재밌거나 다정하지 않으면 언제든 버림당할 수 있기 때문에 늘 노력해야 한다는 것. 셋째, 가정의 첫 느낌은 안전해도 언제든 나가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예상치 못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어린 시절에는 잘 몰랐으나 살면서 깨닫게 된 '안전 수칙'이었다. 그는 두 살 때 네덜란드로 건너가 서양인 부모 밑에서 자란 입양아였다. 새 부모님은 "세상에는 부모가 없는 아이들이 많고 그 아이들을 돌봐 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진 '바른' 사람들이었다. 친아들을 한 명 키우고 있었지만, 미샤와 차등을 두지 않고 공평하게 대우했다. 미샤와 그의 오빠와 엄마 [탐구당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그럼에도 친부모에게 버려졌다는 패배감이 늘 삶을 짓눌렀다. 친구들과 어울릴 때도 조금 더 많이 베풀려 했고, 이성 관계에서도 상대를 잃을까 두려워 될 수 있는 대로 그에게 맞췄다. 또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세월이 흘러 아이를 낳아보니 불쑥불쑥 의문이 튀어 올랐다. "아이를 버린다는 것은 자신의 일부를 버린다는 의미"인데, 친부모는 도대체 왜 나를 버렸을까. 그는 궁금증을 참을 수 없어 입양기관의 문을 두드렸고, 1년 만에 생부를 찾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한때 '박은혜'(실제로는 박근희)라고 불렸던 미샤는 버려진 지 37년 만에 한국에서 생부를 만날 수 있었다.하지만 그를 만날 때마다 배가 아팠다. 왠지 불편했다. 처음에는 반가웠으나 친부의 어색하고 삐딱한 태도가 시간이 흐를수록 느껴졌다. 나중에는 "별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 됐고, 그와의 관계는 "사무적인 관계"로 마무리됐다. 친부는 그를 부담스러워했다. 게다가 친모의 존재를 끝까지 숨기려 했다. "(친부인) 미스터 박은 저를 마치 상점에 물건을 반품하듯이 입양 기관에 데려갔습니다. 결국 그의 삶에 제가 어울리지 않았던 거죠…미스터 박은 좋은 사람이 아니었고, 저는 그에게 너무 실망했습니다." 아버지와